프로그램 안내

인터넷 주인찾기 시즌1. 인터넷 실명제 컨퍼런스
2010년 5월 15일 오후 2시~오후 7시 20분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101호

 

프로그램 순서

<여는 말>
▶ 0. 왜 우리는 모였는가? (민노씨 / 블로거)

<1부 : 인터넷 실명제와 기업, 제도의 문제>
1. 실명제와 포털 (정혜승 / 다음 대외협력실 실장)
2. 실명제와 언론사 (이정환 / 미디어오늘 기자)
3. 뉴플레이어가 바라보는 실명제 (Todd Thacker / 유저스토리랩 프로젝트 매니저)
4. 실명제와 선거법 (박준우/ 함께하는 시민행동 간사)
- 1부 질의 응답 및 토론

<2부 : 블로거가 말하는 인터넷 실명제>
5. 방문자에서 거주민으로 (강정수 / 블로거)
6. 네티즌을 위한 법, 실명제? (송경재 /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연구교수)
7. 초보블로거가 말하는 실명제 (제라드76 / 블로거)
8. 온라인 실존/오프라인 실존 (펄 / 블로거)
9. 대안을 주장한다 : 선택적 실명제 (새드개그맨 / 팟캐스터)
- 2부 질의 응답 및 종합토론

 

녹취록

여러분 시간 소중히 여기기 위해 빨리 하도록 하겠습니다(웃음). 제가 주제로 삼은 건 ‘온라인 실존/오프라인 실존’이란 제목인데요. 이것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하시고, 글을 쓰셨던 분은, 아시겠지만, 민노씨시구요. 왜 이 주제를 저한테 주셨는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고민을 해봤습니다.

[악플 방지 공익광고] 처음에 이 그림은, 잘 아실 것 같아요, 공익광곤데요. 한 아가씨가 앉아서 막 악플을 올리면서 계속 가면을 바꾸어 쓰는 동영상이었습니다. 이게 제목이 ‘네티즌은 얼굴 바꾸기의 달인?’이런 제목으로 해서 나왔던 공익광곤데, 굉장히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던 광곱니다. 하지만 이 광고의 메시지를 보면은, 어떤 현실생활에서의 얼굴은 진짜, 하나의 진실된 모습이고,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거짓의 얼굴로 마음대로 바꾸고 있다, 그런 뉘앙스를 줍니다. 결국은 오프라인의 자아가 실제로 온라인 자아보다 진짜다, 진실이다, 이런 걸 사실은 내포하고 있다고 저는 느꼈는데요. 하지만 정말 그런가, 정말인가,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페르소나] 페르소나라는 것은 칼 구스타프 융이 제시한 개념인데, 자기 내면의 자아가 아닌 타인에게 비추어지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는 가면을 뜻하는 말에서 가져왔는데요. 융은,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를 갖고 있다가 상황에 맞게 꺼내 쓴다고 얘길 했습니다. 결국 이건 뭐냐면, 가면을 계속 쓰는 것은 인터넷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사실 현실 세계에서 보이는 여러 가지 모습이야말로 가면일 수 있다, 라는 것을 페르소나라는 개념에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내면의 진실] 그 융의 이론에서 보면요. 페르소나는 개인의 진정한 자기가 아니라, (화면을 가리키며) 저 밑에 숨어 있습니다. 보이지 않고 무의식 속에 들어 있는데요.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거나 자신을 은폐시키는 역할을 하는 걸로 융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공적 자아, 내가 세상에 노출시키는 자신의 일면이다, 사회적 자아이다. 하지만 자기 실현의 역사, 융은 인간이 살아가는 걸 자기 실현의 역사라고 봤는데요. 그게 자기가 무의식 속에 감춰져 있는 진실한 자기를, 자기가 무엇인지를 들어다보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삶이고, 자기 실현의 역사라고 봤습니다.

하지만 페르소나가 그럼 가면이기 때문에 나쁜 것이냐? 없어야 되는 것이냐? 그것은 아니고요. 사회생활하고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하지만 진실한 자기 모습은 그게 아닐 수 있다,라는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오프라인에서 만날 때] 오프라인에서 만날 때 뭘 물어보느냐. 저는 이게 굉장히 싫은데요. 뭐 몇 년 생? 직업이 뭐죠? 회사, 뭐 학교, 학번, 결혼했냐, 뭐, 애가 있냐 없냐, 굉장히 많은 개인 정보를 물어봅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구나, 라고 느낍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그 사람의 진실인가? 그 사람을 아는 것이냐? 이런 걸 알면…

[어린 왕자] 어린 왕자에 유명한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 애 목소리는 어떻지? 그 애가 좋아하는 놀이는 무엇이지?’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대신 ‘나이가 몇이냐? 형제는 몇이냐?’ 이런 식의 것들을 물어본다(는 거죠). 그리고 ‘예쁜 집이 있어요.’라고 하면 알아들을 수 없고, 1만 프랑짜리 집이 있다, 이렇게 해야 ‘아, 좋은 집이구나’하고 생각을 한다는 그 유명한 어린왕자의 말이 있는데(요). 이것은 사람을 나타내는데 있어서 신상정보라는 것은 진짜 그 사람을 아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는 걸 표현한 그런게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펄/최진주는 누구?] 이것은 제 개인적인(웃음), 저는 뭐냐? 결국 자아에 관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실존에 대해, 저 자신에 대해 들어다봤습니다. 최진주라는 이름을 갖고 생활하고 있구요. 제 페르소나는, 두 딸 엄마이기도 하고, 김모씨의 남편이라고 잘못썼습니다, 아냅니다(청중 웃음), 모 일간지 기자다, 모씨의 부하직원, 선배 또는 후배, 동료, 이렇게 저의 페르소나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펄이라는 필명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이거는 대학교 다닐 때, 과방에 잡기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누구나 글을 쓰도록 하게 한 ‘개발새발’이라는 잡기장이 있었는데요. 거기에서부터 제가 쓰기 시작했던 필명이구요. 또 아이디는 ‘파리스콤(pariscom)’이라는 걸 쓰고 있는데, 파리코뮨에서 앞자를 따서 만든, 그런 아이딥니다. 저의 온라인에서의 표현되는 모습은 ‘파리스콤’이나 ‘펄’로 표현이 되구요. 뭐 이러저러한 취미라든지, 이런걸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럼 과연 나의 본 모습을 잘 아는 사람은 누구냐?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어쩌면 가족이 아닐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히려 내 블로그를 자주 보고, 뭘 좋아하고, 아까 그 어린왕자에 나왔던 것처럼, 그런 것들을 아는 분들은 오히려 제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온라인에서의 필명이나 이런거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그거를 가꾸어나가고자 하는, 그런 분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블로거의 생각(1)] 그래서 블로거가 온라인/오프라인 실존에 대해서 쓴 건데요. 그래서 민노씨의 글을 한번 인용을 해봤습니다. 여기서 보면, ‘필벗들과 신뢰를 쌓고, 우정을 키웠던 과정에서 해당 블로거들의 개인정보 공개는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런 개인정보 공개는 편견의 요소로 작용했다’ 저는 이 말에 굉장히 공감이 가는데요. 어떤 사람을 바로 대하고, 그 사람의 얘기를 직접 들으면서 알아가는 것과 맨 처음에 나이가 얼마고, 학번, 어느 대학 나왔고, 이런 것부터 아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온라인 실존도 가면?] 그럼 온라인 실존, 아까 오프라인 실존이 페르소나이라고 했는데, 그럼 온라인 실존이야 말로 진짜로 나의 내밀한 모습인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블로그나 트위터 같은 온라인 실존을 나타내는 도구들도 모두 관객을 염두에 둔 것이기 때문인데요. 이것은 모든 걸 비공개 포스팅을 한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공개를 한다는 것 그 자체가 결국은 관객을 염두에 둔 것이기 때문에 블로거로서도 그것은 하나의 페르소나다, 온라인에서의 실존도 완전한 자아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고, ‘이상화된 자아’가 아닌가…(생각합니다). 블로그에서 이상화된 자아를 표현하더라도, 익명 댓글로는, 어디 가서 욕을 쓴다던지, 이런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블로거의 생각(2)] 이고잉(egoing)님의 것을 한번 인용을 했는데요(웃음). ‘가면의 총량,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가면을 쓰고 사는데, 어떤 것을 꼭 집어서 자기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고 이야길 하셨습니다. ‘가면이 다양해질수록 삶이 풍부해질 수도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셨는데요. 저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동의를 합니다.

[통합된 자아] 결국은 겉으로 드러난 자신과 마음 속에 감춰진 자신이 모두 다 자신을 구성하는 하나의 모습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천 개의 페르소나가 온라인에도 있을 수 있고, 오프라인에도 있을 수 있지만, 다 그게 자신이 아니냐 하면, 그건 다 자신의 일부다라 생각합니다.

제가 오늘 여기 나오기 전에 아침에 막 딸이 ‘엄마 가지마’ 막 울면서 그랬는데, 거의 눈물로 떼어놓고 나왔는데요(웃음), 그런 엄마로서의 제 모습도 당연히 제 하나의 일부이고요. 또 블로거로서 블로깅을 하고, 이런 행사에 나와서 발표를 하는 것도 또 저의 모습이기 때문에, 결국 온라인 실존과 오프라인 실존, 이것이 너무나 대비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그 모든 것이 한 사람을 구성한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뭐,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생각일 뿐이고요. 오늘 나온 다른 발표와는 다르게 이건 주장 이런 건 아니고, 블로거의 입장에서 온라인 실존과 오프라인 실존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나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 드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명제란] 그래서 실명제라는게 드디어 등장하는데, 실명제란, 오프라인에서의 페르소나가 진짜다라고 인정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이 들고요. 또 다른 내면의 자기자신 또는 온라인에서 보여준 자기 자신은 가짜다라고 낙인 찍는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어떤, 그 통합된 자아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하나, 베네치아에 가면, 가면이 있습니다, 가면을 굉장히 많이 팝니다, 거기가면.

거기 카니발 행사가 있는데요. 옛날에 베네치아에서 가면을 너도 나도 착용하면서 너무 문란해졌다, 뭐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서, 가면 착용을 금지를 시킵니다. 하지만 카니발 기간에는 가면이 허용이 되는데요. 사람이 가면을 쓰면, 그 사람이 귀족인지, 누군지, 경제적 배경이 어떤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이 모두 가면을 걸치고, 신분과 성별을 뛰어넘는 그런 자유를 누렸다고 합니다. 제 생각엔 이런 카니발 같은 장소가, 온라인에서는 익명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내가 오프라인에서 기자든 아니든, 엄마든 아빠든, 아무런 상관없이 그런 모든 신분이나 성별을 뛰어넘는 존재로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게 바로 그 온라인에서의 익명성이라는게 아닌가 생각 하고요.

그러면 결국 실명제라는 것은 결국 이 페르소나를 벗어던지고 내면의 자아가 욕망을 추구하는 것, 이 자체를 막아버리는 그런 가면 금지법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뭐 어떤 여러가지 법적인 문제나 이런 것들도 있지만, 이것은 어떤 내면의 문제에서 사람이, 내 자신의 의지, 내 자아를 찾는 그런 행동 자체를 방해하는 거다, 라고 저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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