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101 강의실에 90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아들 손을 잡고 온 활동가도 계셨고, 주최측의 압박(^^)으로 데이트 장소를 101 강의실로 잡은 젊은 연인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블로그와 트위터를 통해 우정을 맺어온 많은 친구들이 5월, 정말 눈부시게 푸른 봄의 한 때를 함께 했습니다. 우리는 인터넷 속에서 ‘살아가는’ 그 실존에 대해, 항상 대상으로만 취급되었던 우리들에 대해 스스로 이야기했습니다. 메마른 자료, 근사한 논문의 몇 퍼센트 속에서만 의미가 있는 우리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물어보고, 우리를 둘러싼 정치와 경제, 그리고 웹이라는 잡히지 않을 것 같은 공간 속에서 우리가 갈망하는 소망의 풍경을, 우리가 거부하는 억압을 이야기했습니다.

영화 [아비정전]에서 아비(장국영)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1분만 보아달라고 수리진(장만옥)에게 부탁합니다. 그렇게 1분이 흐른 뒤 아비는 말합니다.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우린 1분동안 함께 했어. 난 잊지 않을거야. 우리 둘만의 소중했던 1분을. 이 1분은 지울 수 없어. 이미 과거가 됐으니.”

2010년 5월 15일 오후 7시 10분, 장장 5시간이 넘는 컨퍼런스가 끝났습니다. 하지만 참여한 사람들은 더 이야기하고 싶어했습니다. 더, 더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참석자들을 사회자가 나서서 만류하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그 시간이 얼마나 쉽게 지워질 수 있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참석자는 “나는 이날 컨퍼런스가 한국 인터넷 역사에 기록될 만한 중요한 사건이 될 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이정환)고 들뜬 어조로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이는 “행사 종반을 통털어 ‘대안’에 대한 논의들이 열띠게 진행되었지만, 기존의 보수적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김성일)고 냉정하게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저는 마치 아이처럼 들뜬 미소를 짓던 어떤 발제자의 얼굴을 잊지 못하겠습니다. 그 표정만으로도 저는 너무 그 시간이 행복했습니다. 그것이 결국 쓸쓸한 추억으로 남더라도, 우리가 무엇인가를 함께 했다는 그 따뜻한 기억이 저에게 만들어졌습니다.

아비정전

아비정전

마치 영화 [아비정전]의 수리진이 된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는 이 1분을 잊겠지만 난 그를 잊을 수 없었다. 그 후 그는 매일 찾아왔다. 1분이 2분으로 바뀌고 나중엔 만남의 시간이 길어졌다. (그녀는 그와 밤을 지내고 그녀는 그 후 그를 사랑하게 된다.) ”

우리는 우리가 꿈꾸는 웹에 대해, 우리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들이 원하는 세계를, 우리가 원하는 우리 자신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시간을 함께 나눴습니다. 그 시간, 그 이야기들이 얼마나 오래도록 우리에게 남겨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비와 수리진처럼 쓸쓸한 허무로 귀결될지, 아니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5월의 한 때가 될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시간을, 당신과 나, 그렇게 우리가 드디어 우리의 정체에 대해 즐겁게 토론하고, 신나게 취했던 2010년 5월의 어느 날을 아주 오래도록 기억하기를 저는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드디어 우리만의 드라마를 써가고 있습니다. 그저 타인의 욕망을 흉내내며, 질투와 시기만을 내뿜는 환상이 아니라, 아주 작더라도 우리들만의 성채를, 우리들만의 영토를 개척하는 신나는 모험을, 그 첫 발을 내딛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탐험가입니다.
이제 우리는 모험가입니다.
그 여행은, 당신과 함께라면, 우리가 ‘그 날’처럼 서로에게 진심을 다한다면, 끝까지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함께 한 그 모든 시간들이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만들어줄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당신과 함께 한 그 시간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과 함께 할 시간들이, 우리를 가끔씩 미소짓게 하는 그 오래된 추억처럼, 우리 앞에 남겨져 있기를 원합니다.
고맙습니다.

(글 : 민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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