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안내

인터넷 주인찾기 시즌1. 인터넷 실명제 컨퍼런스
2010년 5월 15일 오후 2시~오후 7시 20분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101호

 

프로그램 순서

<여는 말>
▶ 0. 왜 우리는 모였는가? (민노씨 / 블로거)

<1부 : 인터넷 실명제와 기업, 제도의 문제>
1. 실명제와 포털 (정혜승 / 다음 대외협력실 실장)
2. 실명제와 언론사 (이정환 / 미디어오늘 기자)
3. 뉴플레이어가 바라보는 실명제 (Todd Thacker / 유저스토리랩 프로젝트 매니저)
4. 실명제와 선거법 (박준우/ 함께하는 시민행동 간사)
- 1부 질의 응답 및 토론

<2부 : 블로거가 말하는 인터넷 실명제>
5. 방문자에서 거주민으로 (강정수 / 블로거)
6. 네티즌을 위한 법, 실명제? (송경재 /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연구교수)
7. 초보블로거가 말하는 실명제 (제라드76 / 블로거)
8. 온라인 실존/오프라인 실존 (펄 / 블로거)
9. 대안을 주장한다 : 선택적 실명제 (새드개그맨 / 팟캐스터)
- 2부 질의 응답 및 종합토론

 

녹취록

반갑습니다. 그냥 저는 개인 블로거로서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요즘 고민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방문자와 거주민의 관계에 대해서 컨셉을 좀 잡아보고 있는데요, 발표순서는 프랑스 혁명 전야에서 존재하고 있었던 방문자와 거주민의 갈등을 소개하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이 바로 방문자와 거주민의 갈등이라는 것, 그래서 이 갈등들이 어떻게 해결되어가는가에 따라서 우리나라, 또는 전세계 각국의 인터넷 문화와 질서들이 재편될 거라는 저의 가설입니다, 테제입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전야에는 보통 하머 마스가 분석했던 공론장들이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이 공론장을 형성했던 주체는 도시에 거주하기 시작하였던 흔히 말하는 유상계급, 부르조아지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요, 어떤 문제를 이야기했냐면,

도시에 살면서 그들에게는, 궁정에는 있었지만 도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병원, 궁정에는 있었지만 도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상하수도, 위생시설들, 이런 것이 없다보면서 전염병이 나돌고 아이들이 아파가고 아이들이 죽어가고 그랬습니다. 이들이 카페에 모여서 커피숍에 모여서 이 문제들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자식들에 대한 교육시설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궁정의 귀족들과 왕족들에 대한 교육제도는 존재하였지만 프랑스 혁명 전야에 브루조아지들의 자식들을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들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이 교육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카페에서, 살롱에서 모여서 이곳에서 저널리즘이 탄생하고 뉴스라는 것들의 모태가 탄생했습니다.

궁에서는 바로, 왕과 귀족들은 도시의 입장에서 볼 때는 바로 방문자들입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거주하지 않으며, 거주하지 않기에 도시의 문제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들을 도시의 방문자로 규정하고 도시에 거주하고 있었던 부르조아지들과 새롭게 형성되고 있었던 흔히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노동자 계급들이 이 당시에 도시를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어느 날 빵 문제가 발생하였고 이 빵 문제를 보고서 한 도시의 방문자가 도시를 방문했습니다.

대표적인 도시의 방문자는 바로 마리 앙투아네트. “그들이 배가 고프다면,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는가” 라는 유명한 말로써 바로 도시 거주민들의 불만과 분노를 자아냈던 발언들을 했습니다. 바로 도시 방문자와 거주민들의 갈등을 대표했던…

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1차 프랑스 혁명과 공화정이라는 국가체계입니다.

바로 공화정은 그 뜻 자체로 볼 때 바로 퍼블릭 이슈 (public issue)라는 단어를 갖고 있습니다. 즉, 그들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 그들이 우리에게 관심가져주지 않는 우리의 고민들을 우리 스스로가 고민함으로써 그 스스로 고민하는 체계, 스스로 결정하는 체계, 그것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탄생했던 공화정의 모태이고 프랑스 혁명의 정신입니다.

현재 이러한 사례들을, 저항의 사례들을, 또 사회 변화의 사례들을 보여주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매우 오래 전에 있었던, 1987년에 있었던 독일의 사례와 작년에 있었던 이란의 사례입니다. 바로 이들은 자신들의 저항 미디어로 지폐를 활용했습니다.

1987년에 있었던 서독에 있었던 인구총조사에서 사람들은 내가 누구랑, 이미 주민등록청에서 내가 누구랑 살고 있는지를 다 표기했는데, 오늘 내가 나의 여자친구와, 새로 사귄 여자친구와, 새로 사귄 남자친구와 내 방에서 기거하는 것을 인구조사위원회에서 와서 조사하는 것에 반대하고, 내가 지금 어떤 이웃과 같이 살고 있는 왜 내가 공개해야 되는지, 관청에 공개한 의무 외에 나를 방문하여 나를 조사하고자 하는 것에 거부하는 운동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했던 방법이 지폐에다가 – 독일어로는 오네 미쉬 (ohne mich), 즉 ‘나를 빼고 조사해라’ 라는 – 지폐에다가 이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 대단히 빠른 속도로 이 지폐를 통해서 이 메시지들이 전달됐습니다.

또 하나는 – 제가 급하게 하다 보니까 철자가 틀린 게 있는데 – 2009년 작년 11월이었죠, 10월인가요? 이란에서 2년 전에 있었던 부정선거로 패배했다고 주장하시는 그분들께서 하나의 저항운동으로써 이렇게 지폐에다가 자신들의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하여 작년 12월에 이란 정부는 이렇게 낙서된, 그들 입장에서는 낙서된 지폐의 유통을 금지시켰습니다.

바로, 지폐 자체가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은, 빠른 유통 속도를 갖고 있고요, 또 하나는 바로 이 지폐가 유통되는 것은 하나의 관계망입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네트워크입니다. 이 속에서 저항운동들을 조직했습니다.

이 저항운동들을 분석해보면 먼저 동기가 있었습니다.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거부하는 것, 그들이 반대하는 것, 그들이 표현하고 싶어하는 메시지가 있었고 그 다음에 이들은 어떻게 이 동기를 이 문제점들을 확산시킬 것인가에 대해서 이 지폐라는 매체를, 미디어를 선택했습니다. 즉, 동기가 먼저 존재했었고 그 이후에 관계망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례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번개, 플래시몹 (flashmob)입니다. 요즘 많이 유행하고 있는 건데요.

작년 질트 (Sylt)라고 독일의 아주 아름다운 휴양지가 있습니다. 여기는 흔히 말하는 백만장자들이 모여서 여름을 즐기는 곳인데 왜 백만장자가 많이 모일 수 있냐면 입구를 봉쇄하거나 돈이 없는 사람에게 들어오지 못하게 하지 않습니다. 다만 숙소가 다 아주 비쌉니다. 저렴한 숙소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 숙소비용을 감당할 수 없던 사람들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독일에, 이제 페이스북과 비슷한 사이트가 있는데요,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한 실업자가 제안을 했습니다. 20대 말의 실업자인데요, 이 친구가 ‘왜 그들만 노냐, 거기서. 우리도 놀자. 하여 다 텐트들고 오시라.’ 해서 한 달 만에 번개를 제안했는데 오천명이 파티에 참여했습니다. 어떤 정치적 구호는 없었고요, 파티를 우리도 한번 해보자, 해변가에서… 잘데가 없다? 텐트를 들고 오자. 물가가 비싸냐? 물 싸갖고 오고, 밥 싸갖고 오자. 그래서 일박이일간 오천명이 모여서 파티를 즐겼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작년에 있었던 유럽대학 점거운동입니다. ‘대학이 불탄다’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던 이 점거운동은,

가장 큰 특징은 중앙조직이 전혀 없습니다. 학생조직이 없이 오스트리아 빈, 비엔나에 있는 예술대학교들이 – 당시의 이유들은 제가 뭐 정치적인 이유들과 배경들은 여기서 시간관계상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 대학을 점거했습니다. 트위터로 점거한 상황을 보고하고,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무슨 회의가 이루어지는지, 페이스북으로 그 저항운동들을 조직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 저항운동을 외국으로 확산시킬려고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오스트리아의 경계를 넘어서 독일로, 스위스로 이 운동들이 확산됐습니다. 바로 공감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 한 달 만에 유럽의 98개 대학이 점거운동에 들어가게 됩니다.

바로 트위터에 그 진행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 당시. 이것은 11월 17일, 즉 대학 저항운동과 같은 해쉬태그, 독일어로는 우니브랜트 (#unibrent), 그러니까 ‘대학이 불탄다’라는 그러한 해쉬태그를 통해서 진행되고 있었던 소통의 모습들을 한 학자가 저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사례는 제가 한번 제 블로그에 소개했던 그린피스와 네슬레입니다. 여기서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간략하게 설명해드리면, 단 하루만에 – 오전에 유튜브에 네슬레의 비도덕적인 제품생산을 비판하는 동영상이 올라오고서 단 하루만에 네슬레가 75만명의 숫자를 자랑하는 페이스북을 문닫습니다. 그 곳에서 자신들에 대한 비판의 글들이 들끓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서 제가 분석할 수 있는 것은 – 두 번째 사례와 세 번째와 네 번째 사례를 통해서 해석을 하면

이번에는 동기가 먼저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관계망이 먼저 존재했습니다. 관계망이 존재했고 그 속에서 그들이 이야기했습니다. 자신들의 분노와, 자신들의 걱정과, 자신들의 불만과, 자신들의 문제점들을 이야기할 때 그들은 이 관계망을 통해서 이러한 저항들을 조직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의 사례와 다른 것은 동기가 있어서 네트워크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속에서 그들이 존재할 때, 그들이 그들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어떠한 문제점들이 닥칠 때 그들은 빠르게, 빠르게 네트워크의 속도를 이용하면서 지폐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신들의 저항을 조직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제가 보는 것은 관계망에서 이야기한다는 그 자체, 나의 친구들과 나의 지인들과 내가 신뢰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한다는 그 자체만이… 이렇게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제가 관심을 기울였고요,

이것은 – 마치 비유한다면 – 마찬가지로 도시에, 즉 관계망 속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방문자의 입장이 아니라 자기가 거주하는 그 공간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지금의 인터넷은 월드와이드웹은 방문자의 시대에서 거주민의 시대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뭐 여러가지 수사어구가 필요하겠지만 웹2.0란, 저는 기본정신은 월드와이드웹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누고 공유하는 정신은 웹의 창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이 들고요. 이제 1990년에 창시된 월드와이드웹은 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앞으로 백년, 오백년, 천년, 이천년 이어갈 인류가 만들어 놓은 위대한 작업이라고 생각이 들고, 머지 않아 저는 노벨평화상도 월드와이드웹의 창시자가 가져갈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바로 이제 시작단계에 있는 것, 시작단계에 있는 것이 저는 월드와이드엡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저희가 이제 거주하기 시작했던 이 공간, 도시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던, 파리와 아비뇽에 모이기 시작했던, 그 조그만 도시에 모이기 시작했던 그 사람들처럼 저희들도 이제 월드와이드웹으로 저희들의 거주처를 조금씩 옮겨가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바로 이 월드와이드웹은 바로 관계망의 구조이고 바로 우리들의 거주공간입니다.

그럼 여기서 남는 질문은 바로 우리라는 겁니다. 우리가 거주공간을 이야기했고, 그것에 누가 살 것인가를 이야기한다면,

제가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인터넷은 방문자의 시대였습니다. 방문자들이, 그들이 정보를 접촉하고… 저 또한 방문자였습니다. 그 속에는 제가 알지 못했던 많은 정보들이 있었고, 그 속에서는 제가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고, 그 기쁨에 그것 자체에 저는 지금까지 인터넷을 사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저도 최근 여러 가지 관계망 서비스를 사용하고, 블로그를 사용하게 되고, 트위터를 사용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서 저 또한 점차 거주민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이렇게 거주민을 제가 좀 크게 그렸지만 사실상 아주 작은 포션에, 아주 작은 부분에 제한되어 있지만 점점 커져 나갈 것이라고 생각이 들고요.

지금까지 인터넷 초기는, 2000년이나 2001년까지는 저는 접속 열기가, 즉 그곳에서 접속함으로써 많은 인포메이션을 얻고 누군가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안다는 그 자체, 지식 자체가 중요했던 시대였다는 생각이 들고요. 지금은 바로 이러한 참여 열기가 2010년까지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자기의 흔적을 남기고 관계망을 조금씩 형성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저는 바로 이 2010년의 끝에 위치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 곡선이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좀 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지, 또는 여기서 정체될지… 이것은 바로 우리가 이곳에 거주하는 우리의 개인개인의 행위와 관계망의 정도에 따라 달려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참여 열기가 바로 관계망의 밀도를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아까 사례에서 봤던, 꼭 사회적이지 않더라도 – 파티를 하더라도, 오늘 또 이 자리에 저희가 아주 짧은 준비기간 속에서 모였습니다. – 이것처럼 즉흥적인 행위들이 모여 나갈 수록 저희가, 저는 확신하건데 오늘 이 자리 끝나고 가시는 분들, 많은 분들이 트위터로 또는 블로그로 서로를 알게 되는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이 들고 또 하나의 관계망을 하나 둘 세개씩 쌓아나갈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즉흥적인 행위들이 모여서 관계망의 밀도들이 또한 증가하게 되고 이것은 결국은 거주민의 증가, 인구 증가를 의미하게 된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아까 전에 처음에 드렸던 질문,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저는 대답한다면 ‘우리는 바로 월드와이드웹의 거주민입니다.’ 그리고 바로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거주민이고자 합니다.’ 그리고 나의 친구들, 나의 가족들이 이 거주민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바로 거주민의 문제는 거주민이 풀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어떠한 외부인이 거주민의 문제를 해결해 준 적은 없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이 이 자리에 모였다라고 저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거주민들이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우리의 문제점, 우리의 거주 공간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그 자체가 저는 바로 커다란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야기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해결의 실마리들을 찾아낼 수 있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프랑스 1789년 1차 혁명, 공화정이 탄생하고 공적인 이슈들이 그들에 의해서 이야기됐던 시대처럼 저는 2010년 그리고 2011년 또 5년 뒤가 될 수도 있고 10년 뒤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저희는 이 사회관계망 속에서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질서는 외부에 있는 방문자의 과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문은 열려있습니다. 하지만 방문자의 입장에서 – 학자들이나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이나 방문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할 때 저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한 이야기들은 오히려 마리 앙투와네트처럼 거주자의 분노와 저항들을 살 뿐입니다. 저는 그들이 이러한 사회관계망으로 들어가길 원합니다. 저희들은 그러한 분들이 외부에 있지 않고 우리 속에서 거주할 때, 그들이 우리의 기쁨과, 우리의 문제점과, 우리의 더러움과, 우리의 발전의 희망들을 같이 체험하고 나눌 때, 이야기할 때 새로운 해결들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크립터주: 말씀으로는 새로운 문제점이라고 하셨는데 잠시 단어를 혼동하신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어제 급하게 준비했던 2부 순서를 여는 모두발제이고요, 여하튼 이렇게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서 만나뵙게 되서 고맙고 아직 이것이 성숙한 저의 어떤 학술적 연구는 아니고, 저의 테제입니다. 이런 테제들이 여러분들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옮긴이 : 이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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